2009년 6월 5일 금요일

세차의 미학

운동량이 너무 적다는 생각은 항상 하고 있었지만,
칼로리 소모를 시킬 만한 적절한 방법에 대해서는 생각해 둔게 딱히 없었다.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가장 바람직한 방법인,
조깅은 너무 외롭다.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이다.

우주에서 가장 고독한 자신과 끊임없이 독대하며,
조깅이라는, 동물중에선 오직 인간만이 하는 이 독특한 움직임에 대해서
의미를 계속적으로 부여하고 매번 확신을 가져야 한다.

독일 녹색당 당수 요시카 피셔는 이 조깅에 대해서
'부처를 만나는 길'이라 불렀다.

저질몸뚱이를 개선하고자 하는 당위를 전제로
시행하기 어려운 몇 가지 운동방법을 제외하고,
칼로리를 소모하는 방법으로 세차를 일단 선택해 본다.

퇴근하며, 세차와 관련된 도구 풀 세트를 마트에서 이것저것 골라본다.
이는 마치 조깅운동을 하려는 사람이, 혹은 배드민턴을 시작하려는 사람이
세심하게 조깅화를 고르고,
약간은 들뜬 마음으로 섬세하게 배드민턴 라켓을 만지작 거리는 것과 같다.

세차 용품을 들었다 놨다하며, 기능과 용법을 점검하고
머릿속으로 세차 프로세스를 구상하고,
운동으로서의 세차를 이미지 트레이닝 해 본다.

저녁을 먹고 여지없이 초저녁에 단잠을 잤다.
그리고 컴팩트하게 숙면을 취한 후에 일어나서, 이것저것 잡다하게 할 일을 마무리 짓고,
운동시작 첫 날의 설레임을 약간 가져본다.

새벽 한 시.
모두가 자는 시간, 새로 산 번쩍거리는 세차용품 세트와 물 한 양동이를 들고,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스폰지에 물을 충분히 적셔 지붕부터 닦아 내려간다.
이것은 이미 인터넷으로 검색한 세차방법을 숙지했던 터에 가능한 일이었다.
모든 운동이 그러하듯, 교과서의 도움은 절대적이다.

물스폰지로 먼지와 이물질을 깨끗이 제거해 내려간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그 다음, 극세사 타올을 이용해 물기를 제거한다.
여기까지 45분이 소요됐다.
이미, 배가 고프기 시작한다.
혹시 운동을 너무 격하게 한 건 아닐까.
하여간, 칼로리가 소모되고 있는 분명한 증거였다.

고광택 왁스를 뿌려주며 다시 극세사 천으로 닦아준다.
원을 그리듯 둥글게 둥글게.

마지막으로 코팅왁스를 발라준다.
부드러운 융으로 원을 그리듯 발라주고 10분 쯤 기다린다.
그리고 다시, 부드러운 융으로 닦아준다.
그러면, 이제 번쩍번쩍.

걸린 시간은 모두 두 시간.
조깅으로 치면 20km, 산책으로 하면 10km 를 갈 수 있는 시간.
조깅보다 힘이 들지는 않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배는 고팠다.
이것은 어떠하든 하여간 긍정적인 신호가 아니겠는가.

오늘 세차를 통해 부처를 만나진 못했다.
하지만, 모든 운동이 그러하듯 첫 시간부터 성과를 기대해선 곤란하다.

둥글게 둥글게 원을 그리며,
빛나는 광택 위에 떠오를 부처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흠집과 더러움을 사랑해야겠다.

다음 주 비가 올 확률은 90% 이상이다.
왜냐하면, 오늘 세차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가 와도 화를 내지 않을 것임을 다짐한다.
이것은, 세차를 통해 내 마음에도 어느 정도 긍정적 변화가 찾아온것 인가.

비가와서 차가 더러워지면,
또 세차를 할 수 있고 칼로리를 소모 시킬 수 있다.

비가 오든 오지 않든,
일주일에 두 번은 세차를 해 볼까 한다.
당연하지만, 운동은 규칙적인 반복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미적 목적에 복무하는 운동은 아름답다.
세차는 아름다운 운동이다.